유리 한인 (작곡가, 무직)  

 

나는 왜 음지에서 남아 있는가? (자명한 설명)    

 

유감스럽게도 나는 인간이다. 그게 오늘은 반박 못할 사실. 아주 유감스럽게. 아주,

주 유감스럽게. 그런데, 내가 사실 반박하려고 하지도  않는다. 지금은 어찌 할 수 없

이 이 사실을 안타깝게 여기고 기억해야  하는데, 그러면서도 이 사실을 고려에 넣거

나 존중히 여길 마음은 없다. 그게 바로  내가 음지에서 남으려는 이유다. 다음은,

다른 만족감을 주지도 않는, 설명되지도 않는 몇 개의  단편적인 주장을 펴보겠다.

위 인간인 나는, 인간인 고로 음지에서 남겠다는 주장만큼은, 자명하고 투명한 주장이

. 그 주장에 밑에다가 몇 개의 사족 (蛇足)을 덧붙여보겠다:

잘 알려져 있듯이, 인간은 바로 사회적인 동물이다. ,  모든 것을 혼자 다 할 수 없

, 독립적인 나 홀로 생활을 할 수 없는 존재다. 그러기에, 자신의 온갖 부족한 면들

을 여러 형태의 "의족" (義足)  등의 보충 수단으로 채우거나  고쳐야 한다는 것이다.

거기까지는 별 문제는 없지요? 그러나 문제는, "의족"의 역할을 보통 싫든 좋든  다른

사람들이 맡아야 한다는 것이 "사회 생활"을 이룬다는 사실이다. 조금 더 "어려운"

로 하자면, 부족한, 보편적이지 못한 면들을 우리가 보통 "전문"이나 "전공"으로 부린

다는 것이지요. 그것도 문제로 안  보인다면 계속하겠다: 사람마다 수많은   타인들을

자신의 출세라는 "신성한 업무"를 위해서 이용한다는 것이다. 이와 같은 이용은, 순전

히 동물적인 생활 방식이다. 어디를 가나, 무엇을 하나,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위한

"건재" (建材)의 노릇을 하는 꼴이다.

아 참, 말해도 너무 했다. 그렇게 단순하고 추악한 일은 물론 아니다. 그러한 말을 늘

어놓다가, "하나님의 모습을 가장 잘 닮은 동물을 왜 비방하느냐"는 욕을 들을지도 모

른다. 아이고, 정색을 할 때가 왔군! 사실, 사회 구조가 발전·복합화되다보면, 전문화

"직업"이라는 구체적인 형태를  취하고, "직업"의 테두리 안에서도  온갖 독립적인

공간들과 아늑한 구석들과 자그마한 구조들이 생긴다. 그러다가 각종의 "직업적" 패거

리들 - , 인간의 무리들 -이 만들어진다. 그 구성원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남을 이용

할 수 있게끔 자신들의 활동 방법을 조정한다. 겉으로  보기에는 복잡해 보이지만,

질상 여전히 원시적인 구조일 뿐이다.  (또는 다른 패거리)을 자신의  욕구 만족과

출세를 위해서 이용하겠다는 욕망이 기초이기 때문이다. "직업"이라는 것은 이권을 챙

기고 남과 남이 생산하는 가치들을 이용하는 도구일 뿐이다.

우리 시대는, "직업"의 패거리적인 분리 상 대단히 "발전된" 시대다.  "직업"들의 테두

리가 작아지지만, 남들을 이용하지 못할 정도로  아주 작아져 버리는 것은 물론 아니

. 모두들 돈이라는 형태로 남으로부터 "의족"을 구하려고 뛰는 것이다. 본인이 골치

아프게끔 개인 차원에서 뛸 수도 있고, "국가"라는 "국민"의 개인적 부족함의 대리 만

족 기계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이용할 수도 있다.

이제는 결론. 나는 내 체질상 무리나 패거리에 들어갈 수도 없고, 그들에게 이용 가치

를 제공할 수도 없다. 내가  내면적으로만 존재하려고 하고, 시간이  지날수록 더욱더

그렇다. "음악계" 등과 같은 패거리적 공간들에서 안 잡혀 먹힌 것이 이미 없다. 자리

마다 남을 이용하고 남에게 이용당하는 '열전" (熱戰)이 벌어진다. 나는 물론 내 몫을

챙기려고 그 더러운 대야에 낯짝을 내밀 생각은 없다. 현재의  "음악"은 패거리끼리만

필요한 "고전적" 장르와, 상업적으로  이용될 수 있는  "대중" 장르로 나누어져 있다.

나는 패거리가 생각하는 "전문인"이 물론 아니다. 누차 설명을 안 해도 알 만한  대목

이지요? 음악원에서의 경험과 "작곡가  협회" (실제로 말하자면,  작곡가의 패거리)

다루어 본 경험만으로도 충분하다. 그리고 패거리의 상업적인 부분에서  "웨이터" "

아르바이트"하기란 아무래도 너무 구역질나는 일이다.  내가 언제 돼지들을 먹여주는

일을 하겠다는 서약을 한 적이 있었나? 별로 곱게 안 들리지요? 어쨌든 결론:

오늘은 내가 이미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. 내일은 그것보다 덜 존재할 것이다. 내일 모

레는, "의족"을 달고 다니시는 여러분들의 머리 속에서 내 이름이 잊어지게끔 하겠다.

그렇게 하면서, 음지, 즉 그늘 아래에서  남는 것이다. 누구의 그늘이냐고요? 물론 내

자신의 그늘이지요...